튀르키예(터키) CAY차이
차의 역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오랜 역사동안 음용되었다. 유럽으로 커피의 전파는 이슬람문화로 튀르키예는 오랫동안 커피를 각광받아왔다. 하지만 현재에는 커피 문화와 함께 차문화(홍차)가 생활 곳곳에서 자리 잡고 있다. 튀르키예(터키) CAY차이의 역사적 배경과 기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튀르키예 CAY의 배경
튀르키예 반도와 튀르키예 민족이 차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던 배경을 살펴보면 지정학적 위치를 들 수 있다. 튀르키예 반도는 세계의 힘이 집중되는 곳이었다.
첫째, 일찍부터 발달한 문명으로 문화 수준이 높았다. 오리엔트 문명은 바로 지금의 이라크, 튀르키에 , 이집트를 배경으로 이루어졌는데 후에 페르시아 문명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 비잔틴은 고대 그리스 문명을 바탕으로 고대 로마, 기독교, 오리엔트의 문명을 융합해 정치와 군사제도, 경제와 문화 등에서 오히려 같은 시대의 서유럽을 능가하는 수준 높은 문화를 창조했다. 여러 문명들의 융합은 셀주크 튀르크와 오스만 제국의 문화의 바탕으로 작용하였고 이 점은 튀르키예 반도를 세계 문화가 집결하는 곳으로 만들었다.
둘째, 광활한 영토이다. 서쪽으로는 유럽,북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으로는 페르시아와 몽골이 자리하면서 동양과 서양의 영향을 동시에 받았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 쌓여있어 유럽과는 해상으로 연결되었고 동쪽으로는 실크로드를 통해 아시아 문화와 접할 수 있었다. 따라서 튀르키예는 수세기의 역사 속에서 동서 교류의 중심지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새로운 문화에 대해 수용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셋째, 비옥한 토지와 지형으로 인해 상업이 발달하였다. 튀르키예 반도는 다른 중동지역에 비해 기후와 토양이 양호하였다.당시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주거환경이 좋았기 때문에 이미 상업과 무역 발달의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튀르키예 반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빠르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는데 이는 튀르키예인들로 하여금 경제적 기반과 안정된 심리를 갖게 하였다.
튀르키예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는 튀르키예 민족이 아랍의 전통 문명, 오리엔트문명, 그리스 로마 문명, 페르시아 문명을 융합하여 독특한 문명을 창출하면서 세계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막강한 국력과 여러 이슬람 왕조의 보호 아래 실크로드라는 무역망이 번창하여 동양의 차를 접할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티르키예는 차문화 교류에 커다란 계기를 제공하였다. 튀르키예 반도에 튀르키예민족이 정착하면서 이슬람 정신과 차를 접목시켜 차애호국으로 변화하였기 때문에 튀르키예의 지정학적 위치는 튀르키예의 CAY CULTURE에 의미가 있다고 사료된다.
튀르키예에서 소비되는 차들 중에는 세이지 차(Ada Çay), 타임 차(Kekik Çay), 린덴 차(Ihramur Çay), 시나몬 차(Tarcin Çay), 민트 차(Kuru Nane Çay), 오렌지 차(Portakal Çay)등과 같은 과일차, 허브차도 있지만, 이는 대부분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튀르키예인들이 주로 마시는 차는 홍차이다.
튀르키예의 차는 음료이면서 식사의 일부분이다.차는 스프를 대신하여 식사와 함께 하며 식후 디저트와 곁들여 마시기도 한다.그만큼 튀르키예에서 차는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튀르키예인들 생활전반에 퍼져있다
튀르키예 CAY의 기원
퀴르키예인들이 CAY를 접한 것은 중앙아시아에서 유목생활을 하던 시절이었던 476년이었는데, 당시 직접적으로 음용한 기록은 없지만 무역물품 중에 CAY가 포함되어 있었다.이 지역은 오래전부터 유목민들의 터전이었고 그들은 필요한 물품을 약탈 이외에 무역이라는 방법으로 조달하였다. 당시 스텝과 사막지역을 통과하는 교역길이었던 전통 오아시스 루트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는데, 돌궐은 이 스텝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오아시스 길에서 무역을 중계했던 소그드 상인들은 동서간 대상무역에서 부를 축적할 정도로 무역은 중요한 산업이었다. 5세기 무렵 무역업자에 의해 처음으로 반입되었던 CAY는 6세기까지 의학적인 용도로 음용되었다.
육로 | 해로 | ||
광동廣東 | cha, 차 | 복건福建 | te 테 |
북경北京 | ch'a 차 | 네덜란드 | thee 테 |
한국, 일본, 포르투갈 | cha, 차 | 말레이 | teh 테 |
티베트 | ja 자 | 독일 | tea 테 |
몽골 | chai 차이 | 프랑스 | the' 테 |
러시아 | chai 차이 | 체코, 이탈리아, 스페인,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
te 테 |
이란 | chay 차이 | 핀란드 | tee 테 |
튀르키예 | cay 차이 | 스리랑카 | they 테이 |
그리스 | tsai 차이 | 남인도 | tey 테이 |
알바니아 | cai 차이 | 헝가리 | tea 테아 |
폴란드 | chai 차이 | 영국 | tea 티 |
튀르키예에서 부르는 차이라는 단어는 몽골․러시아․이란과 그 음사가 비슷하고 영국이나 네덜란드와는 확연히 다르다. 튀르키예 인들의 언어로 보았을 때, 차는 해로보다는 실크로드를 통해 전해졌다.
이를 잘 살펴보면 언어를 통해 차가 전해진 경로가 육로였는지 해로였는지를 추측할 수 있고 차가 몽골, 티베트, 이란 등을 지나 서쪽으로 전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튀르키예 차이푸드CAYFOOD
바클라바Baklava
유프카(Yufka)라고 하는 종이처럼 얇은 밀가루 반죽 사이에 버터와 견과류를 켜켜이 넣은 후 설탕 시럽을 더한 것이다. 바클라바는 패스트리와 비슷한 파이로 아랍 전역에서 애용된다.로쿰은 벌꿀이나 말린 과일에 밀가루를 섞어 끈적한 과자였는데 19세기 이후 정제당이 전해지면서 설탕으로 만들게 되었다. 1776년 아나톨리아에서 이스탄불로 온 과자장이였던 하지 베키르가 처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데 일설에 따르면 술탄은 이 과자에 반해 그를 궁전의 수석 제과장으로 임명했다고 한다.
로쿰Lokum
1830년대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로큠을 맛본 영국인 여행자들이 터키의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터키쉬 딜라이트'라 부르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