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초의 그림문자 이해하기
인류 최초의 픽토그램을 통해 시각적 언어의 고대 기원을 살펴보자. 원시 동굴 그림부터 우루크의 점토판까지, 초기 문명을 형성한 의사소통의 진화과정으로 인류, 최초의 그림문자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이해해본다.
인류와 초기 의사소통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를 지칭하며 약 30만 년 전 복잡한 인지 능력을 갖춘 종으로 출현했다.
초기 인류는 단순한 형태의 언어, 몸짓, 그리고 아마도 초기의 상징적 표현을 사용하여 의사소통했다.
인지 혁명
약 70,000년 전 인지 혁명은 인간 인지에 있어서 중요한 발전을 이루었으며 추상적 사고와 복잡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최초의 그림문자
2만 2.000년 전 인류는 라스코와 몇몇 동굴벽에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1만 7,000년 뒤, 인류는 가장 놀라운 업적을 남겼다. 문자를 만들어 낸 것이다. 원시적인 그림 문자가 벽을 장식한 동굴 벽화와 암벽화의 신비를 발견해 본다. 시각적 서술을 통해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하고 초기 인류 문화의 풍부함을 드러내면서 고대 사회의 이야기와 의식에 대한 통찰력을 얻는다.
"'소'를 나타내기 위해서 소의 머리를 그렸어요. '여성'을 나타내려면 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역삼각형을 그림 다음 그 밑에 점을 찍지요. 그림문자를 여러 개 겹쳐서 사용할 수도 있어요. '산'을 나타내는 그림 문자 앞에 '여성'을 나타내는 그림문자를 겹쳐놓으면, 산 너무 외부지역에서 데려온 '여자 노예'를 의미하지요. 우린 이런 그림을 1500개 정도 갖고 있다오" -바빌론 근처에 사는 수메르(유레카 제459호)
그림 문자 및 초기 쓰기 시스템
픽토그램은 사물, 행동, 생각을 단순한 그림이나 기호를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초기 인류는 의사소통 수단으로 그림 문자를 사용하여 시각적 표현을 통해 기본 정보를 전달했을 것이다.
동굴 벽화와 암벽화
초기 인류는 의사소통을 하고 사건을 기록하고 문화적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그림 상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동굴 벽화와 암벽화는 과거를 엿볼 수 있는 매혹적인 창 역할을 하며 고대 조상의 예술적 노력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동굴 벽과 바위 표현 형태는 선사 시대 문화, 그들의 신앙,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독특하게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동굴 벽화는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에서 가장 초기의 사례가 발견되었다. 후기 구석기 시대에 등장하여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인지적, 예술적 능력을 보여준다. 일부 이론에서는 그것이 의식, 샤머니즘 또는 교육 목적으로 사용되었고, 다른 이론에서는 일상 생활과 문화적 서사의 표현이다.
동굴 벽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라스코(프랑스), 알타미라(스페인), 쇼베 퐁다르크(프랑스)의 동굴 벽화가 있으며, 동물과 인간과 유사한 인물을 복잡하게 묘사한다. 알제리의 Tassili n'Ajjer와 남아프리카의 Drakensberg 산맥에는 일상 생활, 야생 동물 및 영적 의식의 장면을 보여주는 암각화가 있다. 인도의 빔베트카(Bhimbetka)와 시베리아 알타이 산맥의 암벽화는 고대의 서사와 상징적 표현을 드러낸다.
프로토 작성의 개발
인간 사회가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 보다 효율적인 의사소통 수단에 대한 필요성으로 인해 프로토타입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그림 기호는 보다 추상적인 표현으로 진화하여 그림 문자에서 초기 문자로의 전환을 나타낸다.
우루크의 점토판(기원전 4천 년)
우루크 (Uruk)는 메소포타미아의 고대 도시로 우르크에서 발굴된 진흙판에는 가장 오래된 문자가 쓰여 있는데, 제작 연도는 B.C. 4000년 말 정도로 추정된다. 이 진흙판에는 오늘날의 사전과 비슷한 내용이 세로로 새겨져 있다. 신전에서 벌어진 일들을 기록한 진흙판은 곡식의 포대 수와 가축의 수를 적어 놓은 것이다.
우루크와 설형 문자판
점토판에 설형 문자가 등장한 고대 도시 우루크는 행정 기록, 경제 거래, 문화 기록에 사용되어 초기 도시 생활에 대한 귀중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이 명판의 중요성에 대해 알아본다. 인류 최초의 픽토그램이 남긴 지속적인 유산과 그것이 후속 문명에 미친 영향을 생각해 본다. 이후 다양한 문자 체계를 형성하고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제국의 문화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데 있어 그들의 역할을 인정한다.
설형문자(楔形文字, cuneifom)는 cuneifom은 '쐐기'를 의미하는 라틴어 cuneus에서 유래하였다. 여러 세기에 걸쳐 설형문자는 많은 변화를 거듭했고, 그 결과 원래 그림의 형체는 완전히 알아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필경사들이 제멋대로 기호의 형태를 변경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필경사들이 사용한 것이 분명한 '기호목록'이 발굴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원시적인 사전 또는 학습 보조도구라고 해석이다.
레부스, 진정한 문자체계로 가는 초석
수메르인과 이집트인의 놀라운 업적은 아이들 놀이처럼 간단한 레부스라는 체계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림문자를 사용할 때, 대상 자체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을 나타내는 소리를 기록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창안했다.
"말하고 싶은 대상 하나하나를 그림문자로 그리려면 너무 많은 그림문자가 필요해. 그렇다면 대상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이름을 나타내는 소리를 그림으로 그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어. 'Capet(양탄자)'을 쓰고 싶다면, 그것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가 단어의 음소(音素)인 'car(달구지)'와 'pet(애완동물)'의 그림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른 예를 들면 수메르의 그림문자에서 '티(ti)'는 화살을 의미했는데 이것이 '목숨'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왜냐하면 목숨을 의미하는 단어의 음소도 '티'였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아주 간단한 시례에 불과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음소를 사용하는 방법은 점점 더 정교해졌다. 그래서 수메를 필경사들은 어떤 기호가 그림문자인지 또는 음소문자인지를 구분하기 위해 때로는 한정부호(限定符號)를 사용했다.
문자라는 개념 자체가 대단한 발명이었지만, 그림문자로 주변의 많은 사물과 현상을 표현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수메르인들은 같은 '음'을 가진 단어를 대신 쓰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수메르어 그림문자에서 '집'은 집 모양을 그려 표현하고 '에'라고 발음한다. 그렇다면 '집에서 불이 났다'의 '집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수메르어로 '집에서'는 '에 · 아'라고 말하는데, 여기서 '-에서'에 해당하는 전치사'아'를 표현하는 그림문자는 따로 없었다. 대신 수메르인은 똑같이 '아'라고 발음하는 '물' 그림을 차용했다. '집'과 '물'을 그려놓고, '집·물'이 아닌 '집에서'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 체계가 바로 '레부스'인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문자 체계는 여러 가지 언어를 표기
이 최초의 문자체계는 수메르어나 아카드어 말고 다른 언어들도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수도를 수사(오늘날의 이란)에 두고 있던 엘람인이 사용한 엘람어도 설형문자로 기록되었고 더욱 놀라운 것은 B.C. 1400-1200년에 강성한 문화를 형성했던 아나톨리아(오늘날의 티르키에)의 히타이트족도 설형문자로 채택하여 널리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설형문자(楔形文字)가 메소포타미아 일대에 널리 퍼져 나가고 있을 때 인근이 이집트와 멀리 떨어진 중국(中國)에서는 다른 문자체계가 발달하고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문자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돌, 진흙, 그리고 파피루스(학명: Cyperus papyrus)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이페러스 파피루스: 식물의 경이로움과 역사적 중요성
파피루스는 나일강 삼각주 지역에서 많이 자라는 식물이다. 사초과(Cyperaceae)에 속하는 사이페루스 파피루스(Cyperus Papyrus)는 다른 식물종과 구별하여 독특한 특성이 있다. 키가 큰 삼각형 줄기와 우산 모양의 꽃송이를 포함하여 사이페루스 파피루스는 습지 서식지의 회복력과 적응성에 기여한다. 아프리카의 원산지부터 세계의 다른 지역까지의 사이페루스 파피루스의 전 세계 분포한다.
고대 이집트인은 파피루스를 이용하여 맛줄, 매트, 샌들, 돛 따위 많은 일상용품을 만들었으며, 그 섬유질 줄기를 이용하여 종이와 유사한 필기소재를 만들어 글쓰기에 혁명을 가져왔다. 이집트인에게 예부터 잘 알려진 양피지는 파피루스보다 가격이 더 비쌌기 때문에 아주 중요한 문서를 기록할 때만 사용되었다.
이상 인류 최초의 그림문자에 대하여 살펴본 후 이해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오랜 동안 천천히 진행된 복잡한 과정으로 이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이며, 아직도 대단히 중요한 에피소드들이 누락되어 있어 전체를 알 수 없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즉 역사적 사건을 보존하려는 구체적인 필요 때문에 문자가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