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the United Kingdom(the Uk)의 시대 구분Ⅰ
영국(UK)의 역사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지속적인 진화의 이야기이다. 영국 제도에는 800,000년 전부터 초기 인류가 거주했으며 스톤헨지와 같은 놀라운 기념물이 남아 있다. 이 선사 시대 영국인들은 정교한 사회와 문화적 관습을 발전시켰다. 다음은 영국 the United Kingdom(the uk)의 시대 구분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앵글로색슨족 및 바이킹 시대;서기 410년 - 1066년 까지).
영국의 선사시대는 약 80만 년 전 인류가 거주했다는 최초의 증거를 시작으로 서기 43년 로마인들이 도착할 때까지 이어지는 방대한 기간에 걸쳐 있다.
구석기 시대 (기원전 80만 년 - 기원전 10,000년)
구석기시대 동안, 영국은 수렵-채취 공동체에 의해 거주되었다. 이 초기 인류는 생계를 위해 사냥, 낚시, 야생 식물 수집에 의존하며 유목민 생활 방식을 살았다. 부싯돌 도구와 동굴 벽화와 같은 고고학적 증거는 그들의 일상생활과 문화적 관행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중석기 시대 (기원전 10,000년 - 기원전 4,000년)
중석기 시대는 기후가 따뜻해지고 숲이 확장되면서 점차 더 정착된 생활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지역 사회들은 더 정교한 사냥과 채집 기술을 연습하기 시작했고 사냥과 절단에 사용되는 작은 돌날인 미세석기를 포함한 새로운 도구를 개발했다. 요크셔의 스타카와 같은 중석기 시대의 유적지들은 초기 정착과 의식 활동의 증거를 드러낸다.
신석기시대 (기원전 4,000년 - 기원전 2,500년)
상당한 사회적, 기술적 발전을 했다. 지역 사회는 식물과 동물을 길들이기 시작했고, 이는 농업의 설립과 최초의 영구적인 정착지로 이어졌다.
로마 브리튼 Roman Britain(서기 43년 - 410년)
로마 제국은 서기 43년에 영국을 침공하여 발전된 기반 시설, 도시화 및 문화 교류를 가져왔다. 로마의 통치는 4세기 이상 지속되었으며, 영국의 사회와 풍경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로마 브리튼은 서기 43년 로마의 정복부터 서기 410년경 로마군이 철수할 때까지 섬이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영국 역사의 기간을 가리킨다.
정복과 건설
서기 43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브리타니아 속주로서 이 섬을 로마 제국에 합병시키는 데 성공했다. 로마 군단은 원주민 켈트 부족에 대한 통제권을 확립했으며 로마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요새, 도로 및 마을 네트워크가 건설되었다.
도시화 및 기반 시설
로마 통치는 영국에 상당한 도시화와 기반 시설 개발을 가져왔다. Londinium(런던), Eboracum(요크), Verulamium(세인트 알반스)과 같은 도시는 중요한 행정 및 상업 중심지로 부상했다. 로마인들은 유명한 포세 웨이(Fosse Way)와 와틀링 스트리트(Watling Street)를 포함한 광범위한 도로망을 구축하여 지방 전역의 무역과 통신을 촉진했다.
행정 및 거버넌스
로마 브리튼은 황제가 임명한 총독으로 구성된 속주 행정과 조세, 정의, 공공사업을 담당하는 관료들로 구성된 관료의 지원을 받아 통치했다. 속주는 시비타테(civitates)로 알려진 행정 구역으로 나누어졌으며, 각 구역은 로마 당국과 협력한 지역 엘리트에 의해 통치되었다.
로마 브리튼은 더 넓은 제국 경제에 통합되어 사치품 및 필수품과 교환하여 곡물, 주석, 납, 양모 등의 상품을 제국의 다른 지역으로 수출했다. 로마의 빌라와 농장이 시골 곳곳에 퍼져 도시 인구를 유지하기 위한 농업 잉여물을 생산했다.
로마 통치는 영국 사회와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로마인들은 라틴 알파벳을 포함한 새로운 건축 양식, 기술, 문자 체계를 도입했다. 영국의 엘리트들은 로마의 관습과 생활 방식을 받아들인 반면, 시골 지역에서는 토착 켈트족의 전통이 지속되었다.
로마 군대는 영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군단은 주 전역의 전략적 위치에 주둔하여 외부 위협을 방어하고 내부 불안을 진압했다. 북쪽의 요새와 하드리아누스 성벽은 적대적인 부족에 대한 방어 장벽 역할을 했다.
5세기 초 로마 브리튼은 야만인의 침략과 내부 불안정으로 인해 점점 더 큰 압박을 받았다. 서기 410년 호노리우스 황제는 공식적으로 영국에서 로마군을 철수시켜 로마의 직접 통치가 끝났다. 로마 권위의 이탈은 심지어 권력 공백을 초래했다.
앵글로색슨족 및 바이킹 시대(서기 410년 - 1066년)
로마 통치가 무너진 후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과 같은 게르만 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여 앵글로색슨 왕국을 세웠다. 8세기와 9세기의 바이킹 습격과 침략은 정치적 지형을 더욱 형성했다.
앵글로색슨족 정착지(서기 410년 - 800년)
서기 410년에 로마 군대가 철수한 후 영국은 앵글로색슨족으로 알려진 게르만 부족의 이주 물결을 경험했습니다. 앵글족, 색슨족, 주트족 등의 부족들은 섬의 여러 지역에 정착하여 노섬브리아, 머시아, 웨식스, 켄트 등 수많은 왕국을 세웠습니다. 앵글로색슨족은 자신들의 언어, 관습, 법률 체계를 가져와 영국 국가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기독교로의 개종
이 기간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앵글로색슨족의 기독교로의 개종이었다. 성 어거스틴과 같은 로마 선교사들은 왕국 전체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도원과 교회의 설립은 앵글로색슨 사회의 기독교화에 기여했다.
바이킹 침략(서기 793년 - 1066년)
바이킹 시대는 8세기 후반 영국 수도원과 해안 정착지에 대한 습격으로 시작되었다. 스칸디나비아 출신의 노르웨이 바이킹은 부와 땅, 영광을 추구하면서 영국으로 반복적으로 침입했다. 이러한 습격은 본격적인 침략으로 확대되어 영국 동부와 북부에 데인로(Danelaw)로 알려진 바이킹 정착지가 설립되었다. 구스럼(Guthrum)과 스벤 포크비어드(Sweyn Forkbeard)와 같은 바이킹 지도자들은 앵글로색슨족의 통치에 도전하고 그들만의 왕국을 세우려고 했다.
알프레드 대왕과 재정복
알프레드 대왕으로 알려진 웨식스의 알프레드 왕은 바이킹 침략자들로부터 앵글로색슨 잉글랜드를 방어하는 데 핵심 인물로 등장했다. 알프레드는 바이킹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앵글로색슨 군대를 재조직하고, 영국 통일 왕국의 토대를 마련했다. 교육과 읽고 쓰는 능력을 장려하려는 그의 노력은 앵글로색슨 문화와 정체성 보존에도 기여했다.
초기의 적대감에도 불구하고 앵글로색슨족과 바이킹족은 점차 문화 및 언어적 유대를 혼합하고 형성했다. 노르웨이어 단어와 지명이 영어에 유입되었고 바이킹 정착민은 앵글로색슨 사회에 동화되었다. 이러한 문화적 종합은 영국 국가와 정체성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헤이스팅스 전투(서기 1066년)
앵글로색슨 시대는 서기 1066년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으로 끝났다. 헤이스팅스 전투는 정복자 윌리엄의 노르만 군대와 해롤드 2세가 이끄는 앵글로색슨 군대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로, 앵글로색슨족을 물리치고 잉글랜드에 노르만 통치를 확립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노르만 정복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노르만 정복 및 중세 시대(서기 1066년 - 1485년)
1066년의 노르만 정복은 정복자 윌리엄 아래 영국에서 노르만 통치의 시작을 알렸다. 중세 시대에는 봉건제, 대헌장, 백년전쟁 등이 발전했다.
튜더 왕조와 스튜어트 왕조(서기 1485년 - 서기 1714년)
튜더 왕조 시대에는 영국 종교 개혁과 영국 교회의 설립을 포함하여 중요한 종교적,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스튜어트 시대는 영국 남북전쟁과 명예혁명으로 특징지어진다.
조지아 시대 및 빅토리아 시대(서기 1714년 - 서기 1901년)
조지아 시대는 대영 제국의 부흥과 산업화, 문화 번영을 목격했다. 빅토리아 시대에는 제국이 더욱 확장되고 사회 개혁과 과학 발전이 이루어졌다.
근대 영국(20세기~현재)
20세기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가져왔고, 대영제국이 쇠퇴하고, 영국이 세계적인 강국으로 부상했다. 최근 역사에는 전후 재건, 유럽 연합 가입, 브렉시트 및 스코틀랜드 독립운동과 같은 현대적 과제가 포함된다.
이상은 영국 the United Kingdom(the uk)의 시대 구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앵글로색슨족 및 바이킹 시대;서기 410년 - 1066년 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