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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커피하우스 British Coffee-house 쇠퇴

by cinema6 2024. 2. 20.

 영국 커피하우스 British Coffee-house 쇠퇴

 

1680년부터 1730년까지, 꼭 반세기 동안 런던은 커피의 최대 소비도시였다. 커피하우스는 각성의 음료·건전한 분위기 속에서 여론을 형성하고 고객들의 비즈니스를 위한 사무실 역할을 했다.

 

이 시기 커피하우스의 수익은 당연히 건전한 음료인 커피의 판매가 주를 이루었지만, 신문의 제작과 비치(뉴스사업)는 커피를 마시로 오는 고객들을 끌어들이는 유인 요소인 동시에 신문판매로 인한 수익도 기대할 수 있었다.

 

 

17세기 후반 내내 번영을 거듭하던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1720년부터 급격한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다음은 영국British 커피하우스coffee-house 쇠퇴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영국 커피하우스의 기능

 

초기 커피하우스들은 뉴스의 생산과 제공, 술집보다 훨씬 건전하고 쾌적한 분위기, 활발한 비즈니스, 토론과 여론의 생산, 유쾌한 위트의 교환을 위한 공간으로서 폭발적인 인기


커피하우스는 뉴스를 생산하는 공간인 동시에 뉴스를 소비하는 공간


18세기에 들어서도 뉴스를 수집·생산·판매하는 뉴스사업(news business)은 커피하우스가 담당한 중요한 기능 중의 하나
일반 고객에겐 개방된 공간인 동시에 특정 전문분야 종사자들만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는 폐쇄적인 공간


1729년 4월 28일 『커피하우스 모닝 포스트(Coffee-house Morning Post)』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간하기도
커피하우스의 체신기능은, 우편 시스템 전반이 개선되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면 언제든 사라질 위기 : 페니 포스트(penny post)는 런던 시내와 외곽 10마일 남짓한 수도권에 있는 커피하우스들이 기능함

 

체스의 공간 올드 슬로터, 

법률가들을 위한 난도, 

상인들을 위한 공간 개러웨이와 조나단, 

성직자들의 모임 장소 트루비·차일드, 

휘그당의 모임장소인 세인트 제임스·스미르나, 

보수적 인물들의 공간인 카카오 트리·오친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드나드는 브리티시 커피하우스, 

예술가들의 돈 살테로, 

문학공간인 윌의 커피하우스·톰의 커피하우스처럼, 

 

커피하우스들은 정부의 정책과 기호음료 시장의 라이벌 커피하우스의 성업 때문에 상당수의 술집들은 경영난을 겪어야 하였고, 이중 일부는 커피하우스로 간판을 바꾸고 커피와 술을 팔기도 함

유명 커피하우스들이 비윤리적인 비즈니스의 공간으로 활용되기도 함
버지니아 커피하우스는 노예를 판매하거나 도망 노예를 붙잡아 돈을 받고 건네주는 공간이 되었고, 조나단 커피하우스에서는 사기꾼들에 의하여 런던뿐 아니라 영국 전체를 뒤흔든 남해버블사건(the South Sea Bubble)이 진행

 

 

 

티가든Tea-garden

 

대부분은 개방된 대규모의 야외공원으로 커피하우스보다 더 다양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


“18세기 내내 영국은 커피를 차로 대체하기 시작. 많은 커피하우스들이 1730년에 사적인 클럽 또는 간이음식점(chop house)으로 전환되었으며, 새롭게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티가든들(the huge new public tea gardens)이 남성·여성·어린이의 발길을 끌었음


차는 끓이기만 하면 되었고, 커피처럼 로스팅·분쇄·냉장 과정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더욱이 인도를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영국은 그곳에 차를 집중적으로 재배


성별과 연령의 제한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고 지식이나 교양 또는 뚜렷한 정치적 견해를 밝히지 않아도 됨


“정오의 홍차” 문화는 오늘날 오후 3시에 제공되는 “오후의 홍차(Afternoon Tea)”로 이어짐

 

 

영국이 커피를 멀리하고 차를 가까이 한 이유

 

영국이 커피 대신에 홍차를 즐기게 된 것은 영국 정부와 동인도회사의 무역전략의 결과

 

1. 홍차의 수입 : 차는 커피와 달리 가정에서 마시는 음료였으므로, 영국인의 정서에 적합

 

2. 커피는 냉철함과 각성을 주는 아랍의 음료인 반면 차는 인도·중국에서 온 자신의 가정에서 폐쇄적인 안락함을 즐기면서 고귀한 평정심의 기운을 내뿜는 차 향기를 선호

 

3. 영국은 인도를 점령하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인도산 차를 영국의 국가 자원으로 삼았다. 영국은 커피의 생산지를 보유하지, 커피무역의 독점권을 갖지도 못했기 때문

 

 

 

커피하우스가 만들고 판매했었던 구어뉴스(spoken news), 수기뉴스(written news) 또는 주변에 떠도는 뿌리 없는 내용을 뒷골목의 영세 인쇄소에서 제작한 신문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였다. 

 

새로 등장한 신문들은 신속·정확한 많은 정보를 매일 발간하는 일간지, 주 3회 또는 주간 단위로 나오는 심층 분석·기획기사 중심의 주간지로서 독자들에게 직접 배달하므로 이를 기반으로 참석한 비즈니스 기능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커피를 대신할 홍차 원료의 수입과 대중화도 커피하우스의 쇠퇴에 일조하게 된다.

 

이상은 커피하우스의 쇠퇴 원인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출처 : 정동준, 18세기 영국 커피하우스의 쇠퇴 원인에 대한 고찰)